담소이야기

 

CEO 칼럼

이봐요 청년

내가 재수할 때 입니다.

영어 강사이셨던 분은 상당히 유명하셨던 분 같았습니다.
미국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다 하셨던 분 이셨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 작성과 수정도 하셨었습니다.

또한 여행을 좋아하셔서 세계를 다니셨으며, 미국에 계실 때도 그리고 그때도 본인의 차 트렁크에는 배낭과 침낭이 항상 있다 하셨죠.

그분이 강의 중에 가끔씩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것이 어린 저의 마음에 많이 남았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있었습니다.

"너희들이 나중에 세계여행, 유럽배낭여행 등을 갈텐데, 나는 가보니 화가 나더라, 웅장한 성당을 볼 때도,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도..
그래서 나는 세계를 다니기 전에 이 나라를 먼저 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강사님은 민족주의자 였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나의 가슴에는 이 나라를 먼저 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부를 다니면서 여름방학 때 친구들은 인도며 유럽을 갈 때 전 국토종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16,17년은 되었네요.
함께 국토종단 할 후배와 우리나라 전도와 중고 자전거를 샀습니다.
배낭을 꾸렸는데 무게 참 무거윘습니다. 텐트에 코펠까지 다 넣으니 20kg 이었습니다.

먼저는 예행연습으로 의정부와 경춘가도를 하루씩 갔다 왔습니다.
왕복 각 5,6시간 거리 였죠..

참 만만치 않더군요.
힘든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위험 했습니다. 갓길이 규정상으로는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더군요. 우리 자전거는 정말 도로의 약자이었습니다.

덤프트럭의, 대형버스의 그 많은 클락션으로 대체 얼마나 놀랐던지, 그들에게 우리는 위험한,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겠죠.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갈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작지만 방법을 찾았습니다.

배낭 크기의 현수막 2개를 만들어서 우리 둘 각자의 배낭에 붙였습니다.
배낭에는 "국토종단 서울 > 제주" 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을 출발하였습니다.

우리의 목표, 경로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백제의 수도 부여와 공주를 거쳐, 신라의 수도 경주를 거쳐,
부산에 가고, 배타고 제주도를 가서, 제주도 종단 후 다시 국토최남단 마라도까지 였습니다.

참참 힘들었습니다.

우리 취지에 맞게 가야한다 해서,
밥도 다 해먹으며 갔습니다. 잠자리는 초등학교 수돗가 옆이 대부분 이었으며, 교회 문을 두드려 하루 잠을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오만 되도, 오늘은 어디서 자야하나.. 참 걱정이 되었었죠.

예전에 보았던 바카스국토종단이 너무 부러워 보였습니다.
걷기만 하면 되니깐요.. 먹여주고, 재워주니깐요.
20kg짜리 배낭을 메고, 자전거 안장에 앉아 하루 종일 자전거에서 페달을 돌린다는 거는 참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엉덩이가 아팠는지..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전에는 액셀만 밟으면 갔었는데요.
정말 이 나라 국토의 70,75%가 산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오르막 또는 내리막 밖에 없더군요.

전도에 점으로 표시되어져 있는 도시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평지가 정말 거기 밖에 없었습니다.

되돌아오기도 많이 했죠.
계속 비포장도로여서 가다 결국 다시 오고요. 전도에는 길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요.

그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내려가던 중에 한명이 다치게 되었습니다. 넘어지는 와중에 차가 그 후배를 피하려다 그 후배 손을 깔고 지나갔어요.
결국 그 후배는 종단을 거기까지만 하게 되었고 서울에 올라와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경주 조금 못가서입니다. 그 후배는 저 혼자라도 꼭 종단을 해야 한다고 해서, 결국 저 혼자 경주부터 부산, 제주도 그리고 국토 최남단 마라도까지 종단을 하게 되었죠.

국토종단을 통해 무엇을 느꼈냐고요?
아름다운 이 강산?
아닙니다. 힘들어서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전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서울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로 느꼈던, 그 모습들.

그 땀을 흘리며 가고 있으면 앞에 차의 4개 창문이 다 열립니다. 그리고 운전자석에서는 아빠가, 조수석
에서는 엄마가, 그리고 뒷자리에서 아들 딸들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들에게 고함칩니다.
"아저씨 파이팅!! ", "어이 청년 파이팅"이라고요.

우리는 그 파이팅을 듣고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 숙인 얼굴에는 눈물이 떨어집니다. 얼마나 목메어 왔던지...

우리가 서울에서 더 많이 내려갈수록 그렇습니다.

아마 "저 친구들이 저 자전거로 여기 공주까지 왔어? 아니 여기 밀양까지 왔어?" 그랬나 봅니다.
서울에서 예행연습 후 덤프트럭에게 길 양보를 부탁 차 만들어 붙인 현수막 "국토종단 서울 > 제주" 보고
그랬나 봅니다.

오르막에 너무 힘들게 페달을 돌리는데 갑자기 차가 우리를 막고 섭니다.
힘들어 죽겠는데요.

"이 봐요 청년!! 내가 얼음물 얼려 왔는데 이거 먹으며 가요.."

우린 극구 사양했습니다.
근데 막 안겨주고 떠나십니다.
사실은 우리에게는 그것은 짐 입니다.
잘 녹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꽁꽁 얼었는지.. 버릴 수도 없습니다. 주신 그 마음이 있는데요.

20kg이 넘는 배낭이 더 무거워 졌습니다.
전 국토종단을 통해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신, 이 나라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4.08.07 담소대표 오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