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미련이 있다.
그중 가장 큰 미련은 삶에 대한 미련이다.
당연히 자신의 생명에 대한 미련이다.
사실은 자신의 생명을 미련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생명이라는 것이, 더욱이 자신의 생명이 미련이라 할만큼..
없거나 끊거나 할, 작거나 간단한 요소가 아니다.
우리에게 바로 다음날 죽음이 확정적이라면,
그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많은 어르신들.. 일흔의, 여든의
어르신들은 삶의 미련?이 우리보다 현저히 적다.
왜 그럴까?
오래 살아서? 살만큼 살아서?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보면서 너무 많은 점심을 먹었다고
점심을 먹고 싶지 않은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난 생명도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
오래 살았으니.. 나의 생명이 덜 소중하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나이 많으신 어르신께서 삶의 미련이 한창때의
젊은이 보다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난 이것은 ''자연의 섭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즐겁고 행복한? 요소가 늘어난다.
물론 무작정 느는 것은 아니다.
2살때, 3살때 무슨 행복의 요소가 있겠는가?
그냥 생존을 위한 요소가 있냐, 없냐의 수준이지.
그러나 청년기로 가면서 친구들과 다니는 재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의 사랑의 행복감..
또 결혼후 자식을 낳고 한 가정이 완성? 되면서 자식과
안사람과 가족을 이루는 그 풍만함.. 은 실로 참으로
크다.
이렇게 성장하면서 행복이 더 커지며, 자신의 노력으로
행복이 더 커질수 있다는 희망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성장?을 해서 가족의 해체기를
맞는다.
아들, 딸이 성장해서 출가를 한다.
근처에 살면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나 거의 대부분은
아들, 딸 자신의 먹거리, 안식처를 찾아서 같은 동네가
아닌 곳으로 떠난다.
1달에 한,두번 찾아오면 효자다.
아들, 딸도 요즘같은 척박한 현대 사회에서 매번 그리
오는것이, 남다른 효심이나 의식이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이렇게 가정이 해체가 되면서 노부모의 행복지수는
급격히 낮아진다.
즉 행복하지 않게 된다.
또 이번에는 건강을 보자.
우리는 부모님께 뭐하자 하면 종종, 사실은 그것보다는
좀 더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힘들다'' 이다.
아니 이게 힘드실까?
그러나 사실 힘들다.
나이들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도 힘들어서
그냥 안가신다고 한다.
어디 가면 힘들다고 그냥 차에 계시겠다고 하신다.
같은 일, 경험에 젊었을때는 힘듦이 3, 기쁨과 만족이 20
이었다면,
이제 나이들어서는
그 같은 일, 경험에 힘듦이 20, 기쁨과 만족은 3 이 된다.
감흥도, 기쁨도 준다.
집 앞 슈퍼에 갈때 우리가 드는 에너지가 2라면,
이제 일흔, 여든이 된 어르신들은 20의 에너지가 든다.
또 거기에 에너지가 충전도 잘 안된다.
이렇게 같은 일에 10배의, 20배의 에너지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 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데.. 그냥 밥 3끼만 있으면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말이다. 별 더 필요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일흔, 여든의 어른들은 벌써 먹어야는 약이 한 움큼이 된다.
건강을 위한 비타민제, 보충제, 한약은 차치하고라도 병원에서 처방해준 혈압약, 고지혈증약, 당뇨약.. 등등
이렇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기쁨과 행복은 줄고
하루하루를 영위해가는 데 들어가는 힘은 현저히 커가게 된다.
예전에는 가뿐히 점퍼 하나 걸치고 살았는데..
이제는 20,30kg의 무게를 지고 살아야하는 거로 바뀌었다.
그것도 매일매일이..
더군다나 그 무게가 줄지는 않고 더 늘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는 서서히 이 삶에 미련이 적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섭리가, 우리 인간 또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미련이 적게로 만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만약 너무 행복한 이 순간.
사랑하는 안사람과 너무나 이쁜,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딸을 남겨두고 이 행복한 순간에 나의 생명이 끊겨진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쉬울까?
자연의 섭리는
이렇게 끊기 어려운 자신의 생명을 좀 더 쉽게? 좀 더 미련 없게 손을 놓을 수 있게로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이제 행복은 없고,
거추장 스러운 것이 하나 하나씩 늘더니.. 이제는 너무 많아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나의 삶에 대한 미련이 줄어들고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정면으로 볼수 있게 되고,
좀 더 쉽게, 좀 더 마음이 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이, 또는 신이 있다면 신이 만들어 놓은 섭리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을 위해.
2018. 11. 03 담소 대표 오 응석